7년 전 처음 달리기 시작했을 때는 500m도 힘들었거든요. 그런데 달리면 달릴수록 늘어나는 게 체력만이 아니더라고요 — 운동에 관련된 온갖 걱정도 함께 늘었어요. 무릎 통증, 수분, 전해질… 그런데 7년이 지난 지금 가장 예상 못 했던 복병은 바로 철분 결핍이었어요. 훈련량이 줄지도 않았는데, 어느 날부터 같은 코스에서 페이스가 무너지고 회복이 예전 같지 않았어요. 처음엔 쿠웨이트 더위 탓을 했는데, 알고 보니 달리기 자체가 철분을 조금씩 갉아먹고 있었던 거예요. 러너의 몸이 철분을 잃는 기전, 그리고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지 정리해봤어요.
왜 러너는 철분이 부족해지기 쉬울까
발바닥이 적혈구를 깨뜨린다 — 족저 용혈
달릴 때마다 발바닥이 땅에 닿는 그 충격이 발 모세혈관 안의 적혈구를 직접 파괴한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이를 족저 용혈(footstrike hemolysis)이라고 해요.
Journal of Applied Physiology · 2001발 충격에 의한 기계적 외상이 달리기 후 더 큰 용혈을 일으키는 원인이며, 밑창이 단단한 신발을 신은 러너는 부드러운 신발 그룹보다 망상적혈구 수준이 29% 높았다.원문→
하루 한 번의 용혈 에피소드 자체는 임상적으로 큰 문제가 아닐 수 있지만, 고훈련량 마라토너처럼 매일 반복되면 누적 효과가 상당해질 수 있어요. 특히 발 충격이 수반되는 농구나 테니스 선수들도 사이클리스트나 조정 선수보다 철분 저장량이 낮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요.
땀으로도 철분이 빠져나간다
쿠웨이트의 여름 새벽 달리기를 해본 사람이라면 땀이 얼마나 쏟아지는지 알 거예요. 그 땀이 단순한 수분만 아니라는 게 문제예요.
땀을 통한 철분 손실은 주요 요인으로 꼽히진 않지만, 땀 속 철분 농도는 남성 기준 리터당 0.1~0.3mg, 여성은 리터당 최대 0.4mg에 달해요. 특히 하루 땀 분비량이 5리터를 넘을 경우 땀을 통한 철분 손실이 무시 못 할 수준이 될 수 있어요. 쿠웨이트 여름처럼 40도를 넘나드는 환경에서는 이 숫자가 현실로 다가와요. 여름 달리기 후 전해질 보충을 제대로 챙겨야 하는 이유가 철분만의 문제가 아닌 것도 이 맥락이에요.
운동 직후 철분 흡수가 막힌다 — 헵시딘 기전
이게 저도 처음에 몰랐던 부분인데, 달리기 후에 철분이 풍부한 식사를 해도 흡수가 제대로 안 될 수 있어요. 원인은 헵시딘(hepcidin)이라는 호르몬이에요.
운동을 하면 염증성 사이토카인인 IL-6가 분비되고, 이것이 철분 흡수를 조절하는 헵시딘의 주요 조절 인자로 작용해요. 헵시딘이 증가하면 철분 흡수가 떨어지며, 헵시딘은 운동 후 3~6시간에 최고치에 도달해요.
The Journal of Nutrition · 2022지속적인 달리기 후 헵시딘이 51% 증가하고 철분 흡수율이 36% 감소했으며, 이 패턴은 철분 저장량이 낮은 훈련된 러너에서 관찰됐다.원문→
즉, 런 직후 철분 보충제를 먹어도 몸이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할 수 있다는 거예요.

페리틴 수치, 어디서부터가 문제일까
일반 기준과 러너 기준은 다르다
러너에게는 페리틴 수치가 20~30 ng/mL 수준만 돼도 헤모글로빈이 정상 범위에 있더라도 퍼포먼스와 회복이 저하될 수 있어요. 낮은 페리틴 + 정상 헤모글로빈 + 증상 있음, 이 조합이 이제는 스포츠의학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패턴이에요.
스포츠 의학 연구에서는 여성 러너 최소 35~40 ng/mL, 남성 러너는 40~50 ng/mL를 증상 없는 수준의 최소 기준으로 보며, 퍼포먼스 최적화를 위해서는 50 ng/mL 이상이 더 실질적인 목표치예요. 일반 혈액검사에서 “정상”이라고 나와도 러너에게는 부족할 수 있어요. 달리기 전 체크해야 할 수치를 정기적으로 확인해두는 게 중요한 이유가 여기 있어요.
철분 결핍이 페이스 저하와 어떻게 연결되나
철분 결핍의 징후로는 이전에 쉬웠던 훈련 페이스에서의 원인 불명 피로, 고정 페이스에서의 자각 운동 강도 상승, 세션 간 회복 둔화, 일관된 훈련에도 불구한 기록 정체 또는 퇴보, 손발톱 약화, 모발 탈락 증가 등이 있어요. 이 증상들은 과훈련 증후군과 거의 동일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혈액 검사만이 두 가지를 구별하는 유일한 신뢰할 수 있는 방법이에요.
철분 고갈은 헤모글로빈 감소를 통해 최대산소섭취량(VO₂max)에 직접 영향을 미치고, 혈중 산소 운반 능력이 떨어지면 젖산 축적이 빨라지고 회복도 길어져요. 회복이 느려지면 다음 훈련의 질도 떨어지는 악순환이 시작돼요. 수면 부채가 러닝 페이스를 무너뜨리는 이유와 함께 읽어보면 비슷한 양상을 확인할 수 있어요.

식품으로 철분 올리는 실전 조합
헴철 vs 비헴철, 흡수율이 다르다
철분은 두 종류예요. 고기·생선·조개류에 들어있는 헴철(heme iron)과, 채소·콩류·강화 곡물에 들어있는 비헴철(non-heme iron)이에요.
혼합식 기준(고기·해산물·비타민 C 포함)의 철분 생체이용률은 14~18%이고, 채식 식단에서는 5~12%에 불과해요. 식물성 식품만으로 철분을 채우려면 훨씬 더 많은 양을 먹어야 하고, 그마저도 흡수율이 낮아요. 비헴철 흡수율을 높이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비타민 C와 함께 먹는 거예요.
시트러스류, 파프리카, 토마토 같은 비타민 C 풍부 식품을 비헴철 식품과 함께 먹으면 흡수율이 높아져요. 반대로 차, 커피, 칼슘이 많은 유제품은 식사 중에 피하면 비헴철 흡수가 개선돼요. 저는 달리기 전 식사를 바꿨는데, 렌틸 샐러드에 레몬즙을 짜 넣는 것만으로도 체감이 달랐어요.
하루 철분 목표와 타이밍 전략
성인 남성은 하루 약 8mg, 19~50세 여성은 약 18mg의 철분이 필요해요. 러너는 손실이 더 크기 때문에 이 수치가 최소 기준이에요.
운동 후 3~6시간은 헵시딘이 높아져 철분 흡수가 줄어드는 시간대예요. 헵시딘 농도는 아침에 가장 낮고 하루 종일 상승하는 일주기 변동을 보이기 때문에, 아침에 철분을 보충하는 것이 저녁보다 유리할 수 있어요. 보충제를 복용한다면 격일 복용 전략도 고려해볼 수 있어요. 연구에 따르면 철분 보충제를 섭취하면 최대 24시간 동안 헵시딘이 상승하기 때문에, 격일로 먹으면 흡수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어요.

철분 보충제, 마음대로 먹으면 안 되는 이유
자가 진단·자가 보충의 위험
철분 보충제의 자가 진단과 자가 보충에는 위험이 따라요. 변비 같은 위장 부작용은 흔하고, 더 심각하게는 유전성 혈색소침착증(hereditary hemochromatosis)이 있는 경우 철분 과잉 축적이 주요 장기에 손상을 줄 수 있어요.
혈액검사 없이 장기간 철분 보충제를 자가 복용하지 않는 것이 중요해요. 페리틴이 정상 범위라면 추가 철분은 이득이 아니라 위험이에요. 저도 처음에 ‘그냥 먹으면 낫겠지’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제는 꼭 수치를 먼저 확인해요.
언제 검사받고, 얼마나 모니터링해야 할까
훈련 블록이 시작될 때마다(4~6개월 간격) 페리틴 검사를 받는 게 권장돼요. 증상이 있는 경우엔 더 빨리 검사하는 게 좋아요. 보충 시작 후 8~12주에 재검사를 해서 변화를 확인하고, 12주 경구 보충 후에도 페리틴이 낮게 유지된다면 혈액전문의나 스포츠 의학 전문의에게 의뢰해야 해요.
결국 페이스가 무너지는 이유를 “요즘 나이 탓”이나 “더위 탓”으로만 돌리기 전에, 한 번쯤 혈액 수치를 들여다보는 습관이 중년 러너에게 필요한 거예요. 의외로 간단한 답이 거기 있을 수 있거든요.
